누군가에겐 야구가 단순한 스포츠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야구는 계절처럼 반복되는 기다림이고, 추억이고, 인생의 한 조각이다. 1982년, 내게는 특별한 해로 기억된다. 처음으로 ‘프로야구’라는 단어가 생겨났던 해이자, 나와 베어스가 인연을 맺게 된 해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냥 친구 따라 시작한 야구였지만, 어느새 40년이 넘도록 나의 일상 속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다.
🧒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 1982년, 프로야구의 시작
1982년, 나와 베어스의 인연이 시작된 해이다.
1982년, 한국 최초의 프로 스포츠, 프로야구. KBO 리그가 출범했다. 당시 원년 프로야구는 총 6개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 중에서 OB 베어스는 1982년 1월 15일, 가장 먼저 창단식을 가진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야구단이었다..
1982년 KBO리그의 슬로건은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었으며, 당시의 6개 구단이 어린이 회원을 모집했고, 어린이 회원이 되면 야구모자와 야구잠바 등도 제공했다. 좋아하는 팀의 모자를 쓰고, 잠바를 입고, 일종의 소속감을 느끼며 우린 프로야구에 푹 빠져들었다.
⚾ 친구 덕분에 야구에 빠지다
그해 봄, 내 일상 속에 야구가 들어온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야구를 정말 좋아했던 내 친한 친구.
그 친구 덕분에 자연스럽게 나는 옆에서 함께 경기를 보고, 규칙을 알게 되었고, 선수들의 이름을 외우며 점점 빠져들게 됐다. 친구는 삼성 라이온즈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 친구와 쉬는 시간, 그리고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함께 야구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새 OB베어스라는 팀에 매료되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팀의 에이스 투수 박철순의 존재가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 박철순 그리고 OB베어스의 매력
당시 박철순은 유일하게 미국의(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트리플 A팀) 선진야구를 경험해 본 선수였으며, 한국 프로야구 개막에 맞춰 OB베어스로 스카우트된 선수였다. 투수 박철순은 빠른(150km/h) 공, 다양한 구종(커브, 슬라이더, 너클볼(박철순 본인은 팜볼이라고 이야기함)), 그리고 멋진 투구 폼까지.. 야구팬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선수였다. 박철순은 그 해 24승 중, 22연승이라는 믿을 수 없는 대기록으로 OB베어스를 정규시즌 우승으로 이끌었다.
9명이 하는 야구에서 투수 한 명이 팀 분위기를 이렇게까지 바꿀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등판은 곧, 베어스의 승리를 의미했다.
🏆 원년 한국시리즈, 잊지 못할 감동
그리고 그 해 가을, 1982년 첫 번째 한국시리즈에서 OB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맞붙었다.
친구와 나는 서로 응원하는 팀이 달랐고, 우린 정말 온 마음을 다해 각자의 팀을 응원했었다.
베어스와 삼성라이온즈의 코리안시리즈, 비록 직접 경기장을 찾지는 못했지만, 텔레비전 앞에서 손에 땀을 쥐며 응원했던 그 감동의 순간들.
결국, 베어스가 원년 우승을 차지했고, 난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 받았다.
❤️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팬심
1982년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난 꾸준히 베어스를 응원하고 있다. 중간에 모기업의 사정으로 이름도 바뀌었고, 강팀의 자리에서 멀어졌던 암흑기, 2000년대 중반에는 포스트시즌에 승승장구하다가 마지막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는 불운으로 팬으로서 맘이 많이 아팠던 시즌들도 있었지만, 내 팀은 언제나 베어스였다.
승패를 떠나 팀의 색깔, 그 끈질긴 투지와 끈기, 그리고 팬과 함께하는 진정성이 내가 지금까지도 이 팀을 사랑하는 이유다.
📺 추억에서 오늘로, 블로그의 시작
이제는 그때처럼 매 경기마다 TV 앞에 앉아 있을 순 없지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베어스가 경기를 하는 날이면, 결과를 확인하고, 결과를 알면서도 하이라이트 영상을 찾아본다.
이 블로그를 통해 나는 다시 그 시절의 설렘을 꺼내보려 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과 그 시절의 추억을 나누고, 현재의 KBO리그를 함께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첫 번째 이야기를, 1982년, 나와 베어스의 인연으로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