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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이정후

by dw-thirty30 2025. 4. 15.

베어스와 함께한 나, 그리고 이정후의 등장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한결같이 베어스만 응원해 온 원년 베어스 팬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막 시작됐을 때 친구 덕분에 야구를 접했고, 그때부터 베어스는 늘 내 마음의 중심에 있었다. 첫정이 무섭다고 다른 팀 선수에게는 도통 마음이 가질 않았다. 아무리 잘해도, 베어스가 아닌 이상 내 응원 대상은 아니었다. 이정후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키움(당시 넥센)에서 1차 지명을 받았을 때, 야구계와 미디어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았었다. ‘이종범의 아들’이었으니까. 예전에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양준혁, 그리고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제는 그들도 은퇴한 지 오래지만, 야구팬이라면, 저절로 수긍하게 되는 이야기다. 그동안 참 많은 2세들이 아버지를 따라 야구를 했었다. 하지만 딱히 성공 사례가 생각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사그라져 갔다. 그래서 이정후의 1차 지명 뉴스도 나에겐 그저 '또 나왔네...'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금세 사라질 수도 있는 이름처럼 보였다. 더구나 그의 아버지, 이종범은 줄곧 베어스만 응원했던 나에게도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결국에는 그게 큰 부담감으로 이정후의 어깨를 짓누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종범은 상대 팀으로 만나면 정말 짜증 나는 선수였다. 1993년 해태의 1차 지명을 받은 이종범은 데뷔하는 해부터 최고였다. 두 번째 시즌인 1994년에는, 단일 시즌 84 도루라는 전설 같은 기록도 세웠다. 84 도루라니.. 안타가 아니고 도루가 84개. 출루만 하면 뛰었다는 얘기가 과장이 아니다. 어떤 선수는 '발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라고 얘기하기도 했고, 몸의 탄력이 엄청나서 '리드를 길게 잡고 마치 치타처럼 쭉쭉 나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를 둔 이정후에게, 나는 기대보다 선입견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냥 물려받은 재능으로 야구하는 2세 야구인일 거라는.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으로 불릴 수 있도록…”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2017년 한 시즌 만에 완전 박살 났다. 그리고 나중에 본  인터뷰 영상. 2016년 이정후가 1차 지명을 받고 난 후 했던 인터뷰인데, 휘문고등하교 유니폼을 입고 앳된 얼굴에 비쩍 마른 이정후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이종범의 아들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으로 불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정후는 레벨이 다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거 같았다. 이제는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다짐이 강하게 느껴졌다. 인터뷰 당시에는 사실 '젊은이가 호기롭다.'이런 반응이 더 지배적이었을 거다. 그런데, 이정후는 자신의 말을 실현시켰다. 그것도 데뷔 시즌에. 2017년 시즌을 마치고, 신인왕을 싹쓸이했고, 그 후, KBO에서 7 시즌 동안 뛰어난 성적, 꾸준함으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아이돌처럼 예쁘장한 얼굴과 다르게, 그라운드 위에선 냉철하고 성실한 선수였으며, 게임에서 중요한 순간 자신에게 온 기회를 온전히 즐길 줄 아는 멋진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종범의 아들’이 아닌 ‘이정후’라는 이름만으로 그를 기억하게 되었다.

 

Dadger Stadium

 

KBO 자존심을 걸고, 팬이 되다

 

 

2024년, 이정후는 마침내 MLB에 입성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장기 대형 계약은 그의 가치를 증명해 주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정후의 계약 소식을 들으면서 마음을 정했다. “그래, 이제 이정후를 응원하자.” 솔직히 그동안 MLB에 진출했던 KBO 출신 선수들(김현수, 이대호, 박병호, 황재균 둥)의 성적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쪽팔린다.'이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국야구가 미국야구, 일본야구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오랜 KBO리그의 팬으로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KBO의 탑인 그들이 보여준 경기력은 나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더욱이 돌아온 뒤 과도한 조건의 복귀 계약은 팬 입장에서 정말 화가 났다. 물론 그 계약이라는 것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구단과의 합의하에 하는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단지 MLB에 한번 갔다 왔다는 이유로 그런 계약을 안겨주는 구단들도 참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정후는 다르다. 기본기와 정신력, 그리고 꾸준함을 모두 갖춘 선수. 그야말로 KBO의 자존심을 세워줄 존재라는 확신이 들었다. 비록 2024년 시즌은 수비 중 펜스와의 충돌로 어깨 부상을 입고 조기 아웃됐지만, 빠른 수술 후, 이정후는 성실하게 힘든 재활을 소화하며 시즌을 준비했다. 애리조나 스프링 캠프부터 들려오던 좋은 소식들은 내 기대를 키워줬고, 시즌이 시작된 지금,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3번 타자로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나의 두 번째 응원

 

베어스와의 인연은 여전히 내 야구의 뿌리다. 그리고, 이제 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의 팬이다. 리그도 다르고, 팀도 다르지만, 야구에 대한 진심만은 그대로다. 내 블로그는 그런 마음을 담아 시작됐다. 베어스와 함께, 그리고 이정후와 함께. 앞으로도 이 두 팀, 아니 두 존재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가려고 한다. 나의 두 번째 응원이 이미 시작됐다.